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숙종 업적에 관하여

조선 후기 숙종(1674~1720)은 인사 관리를 통하여 세력 균형을 유지하려는 탕평론을 제시하였다. 그러나 실제로는 상황에 따라 한 당파를 일거에 내몰고 상대 당파에게 정권을 모두 위임하는 편당적인 인사 관리로 일관하여 3차례의 환국이 일어나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하였다(일당 전제화). 경신환국(168): 유악(기름먹인 장막) 사건을 빌미로(실제는 도체찰사 문제) 서인이 남인(허적, 윤휴 등)을 몰아내고 집권. 남인에 대한 처벌을 놓고 서인의 노론(강경론), 소론(온건론) 분화. 기사환국(1689): 남인이 원자(장희빈 소생) 정함에서 서인을 몰아내고 집권, 송시열 등 사사되었고, 장희빈이 왕비로 책봉됨. 갑술환국(1694): 인현왕후(서인 옹호) 복위와 장희빈 강등 관련, 남인이 쫓기고 서인(노론과 소론) 재집권 그렇지만 강화된 왕권을 통하여 마지막 5군영인 금위영(궁궐방위)을 설치하고(1682), 백두산 정계비를 세우고(1712), 대동법을 최종적으로 완성하였으며(1708), 상평통보(1678)를 발행하는 등의 업적을 남기었다. 성종(1469~1494) 대에 조선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이 완성·반포되어 통치체제가 정비되었다. 효종(1649~1659) 때에 러시아가 흑룡강쪽으로 청을 침공해 오자, 청은 조선에 원병을 요청하였다. 이에 조선은 두 차례(1654-변급, 1658-신유)에 걸쳐 조총 부대를 출병시켜 큰 전과를 올리기도 하였다(나선정벌). 영조(1724~1776) 때에 군역의 개혁으로 균역법이 시행되어(1750) 농민은 1년에 군포를 2필에서 1필만 부담하면 되었다.조선 후기 정조(1776~1800)는 신진 인물이나 중·하급 관리 가운데 능력 있는 자들을 재교육시키는 초계문신제를 시행하였다.